2014년 5월 31일 토요일

2014년 4월 11일 금요일

원나라, 명나라 시기의 한류 고려양 (高麗樣) / 元朝 明朝 高丽样 汉服 服饰


명나라 고려양 한푸 / 明朝 高丽样 汉服 服饰


위 그림은 명나라 시기의 그림입니다.

처음 보면 누구나가 느끼지만 여자들이 입은 복식이 한복과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원래의 중국 복식은 저러한 모습과 꽤 차이가 많이 납니다.

아래는 중국의 전통적인 여자 기본 복식입니다.





한푸의 시대별 변천


전통적으로 한대 이후의 중국의 여성 복식은 치마를 윗옷 위에 입으며, 치마의 실루엣 또한 약간 끌리는 1자 형입니다. (여기에 예를 갖출 때나 추울때는 위에 포를 입습니다)

하지만 원나라 시기에 갑자기 전통적인 중국옷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A자형 풍성한 치마에 저고리를 바깥에 입는 옷이 등장합니다.

원나라 복식의 유풍인건가..?하면



몽골 복식의 여성들


몽골 복식의 남성들

몽골 복식의 남녀


 원나라당시 몽골의 전통 복식입니다.

하지만 원나라, 몽골 여성들의 복식은 맨위의 그림과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맨 위의 그림은 오히려 한복에 훨씬 가까운 모습이죠.

하지만 몽골복식과 달리 한국은 삼국시대 이래로 계속해서 A자형 실루엣이었습니다. 또한 저고리를 바지나 치마 위에 입죠.

그리고 전통적으로 치마 저고리의 이분적(二分的)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고구려 벽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아래는 고구려 벽화 속의 옷으로 백제, 신라, 가야도 아래와 같은 모습의 옷을 입었습니다. )









실제로는 이런 모습입니다.

송나라에서 고려에 사신으로 온 서긍이 말한 고려여인들의 우스꽝스러운 치마도 이러한 것을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겉치마 안에 속바지, 속치마, 살을 받쳐 부풀려서 항아리모양, 피라미드모양을 만듭니다.

그리고 저고리를 바깥에 입으며 치마 저고리 둘로 나뉜 양식이죠.


조선 전기 복식

예복은 특히 안에 옷을 몇겹 더 받쳐입어 치마를 크게만듭니다.


조선 전기 복식 복원

조선 중기 실루엣의 한복


그리고 이것에 대한 당시 중국의 기록들이 몇개 있습니다.


 다음은 장욱의 <궁중사>의 글입니다.

" 张昱《张光弼诗集》卷三《宫中词》: 宫衣新尚高丽样,方领过腰半臂载,连夜内家争借看,为曾着过御前来。"

 "궁중에서 새롭게 유행하는 것은 고려양이라네 방령(링크:중국쪽에선 이것을 고려방령이라고 부르더군요)에 짧은 허리, 반소매 궁중 여인들이 밤까지 이어져 구경하려 하네  이는 고려 여인이 황제 앞에 이 옷을 입고왔기 때문이라네"



 아래는 [속자치통감 권이백일십사 원기삼십이]에 기재된 글입니다.

《续资治通鉴 卷二百一十四 元纪三十二》记载:“后亦多畜高丽美人,大臣有权者,辄以此遗之,京师达官贵人,必得高丽女然后为名家。自至正以来,宫中给事使令,大半高丽女,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皆仿高丽,举世若狂。”

"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원나라로 공녀로 간 여자들 중에는 황후까지 된 자도 있었으며 많은 수가 시녀로, 궁녀로, 귀족의 첩으로 갔으며, 이들이 가지고 간 고려의 문화는 명나라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숙원잡기]의 기록에는,《菽园杂记》::“马尾裙始于朝鲜国,流入京师……于是无贵无贱,服者日盛。至成化末年,朝臣多服之者矣。阁老万公安冬夏不脱……。大臣不服者惟黎吏侍淳一人而已。此服妖也,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은 조선국(고려)에서 시작되어, 수도로 유입됬으며......귀천을 가리지 않고 복식이 날로 성했다. 성화말년에 이르러, 조정 신하들도 입게 되었다. 각로만공안이 겨울에도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이 복식은 요사하므로, 홍치 초시에 금지되었다.



또 [만포필기]에는, 《寓圃笔记》:"发裙之制,以马尾编成,系于衬衣之内。体肥者一裙,瘦削者或二三,使外衣之张,俨若一伞。",

치마를 넓히는 제도는, 말꼬리를 옷안에 엮어서 만든다. 몸을 비대하게 만든 하나의 치마로, 마른사람은 혹 두개 세개를 입는다, 옷을 바깥으로 넓게 퍼지게 만드는데 쓰는데, 우산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미군이라면 치마에 살을 대어 부풀리는 것으로 한국복식에서 유래된 것이며 외에도 한국 복식은 궁내, 궁외, 귀천을 넘어 중국의 남자 복식에까지도 넘어가게 됩니다.

나중에는 원 대도의 절반이 고려인이라는 우스갯말이 생길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맨위의 그림은 이러한 '고려양'이 최고로 유행하던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고, 온 세상이 미친것 처럼 고려문화를 모방하던 때였으니, 당시의 중국옷이 한복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이렇게 원나라 시기부터 명나라 중기까지 한국복식은 중국에서 유행을 했고 꽤 깊숙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중국에서도 아래의 모습과 같은 옷이 만들어집니다.


원대(몽골) 복식 고려양, 元代 服饰 高丽样

원대(몽골) 복식 고려양, 元朝 服饰 高丽样

명나라 고려양 한푸 , 明朝 服饰 高丽样 

명나라 고려양 한푸 , 明朝 服饰 高丽样 

명나라 고려양 한푸 (明代 高丽样 汉服)

명대 복식 고려양, 明朝 高丽 服饰

명대 복식 고려양, 明代 高丽 服饰

원나라 고려양 복식, 元代 服饰 高丽样

여의명비전의 고려양 한푸  / 女医明妃传 明朝 高丽样 汉服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러한 복식을 가리켜 중국 정통에 맞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결국 호풍(胡風)을 몰아내고 중국 전통 복식을 되찾자는 운동도 생겨나며 고려양이 요사스럽다는 이유로 나라에서 금지령이 내려지며 빠른 시간내에 사그라집니다. [아래그림 참조]




明朝 服饰

明朝 服装

明代 服装


 문화라는 것은 항상 쌍방향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엄청나게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중국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했다는 느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여러 중국의 고문헌에서 고려양에 대해 명백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많은 중국인들은 "대장금옷은 중국을 베낀 짝퉁이다..!"는 등의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고 있죠.. 실제로는 정반대인 것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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